신현정의 말걸기 (개인전 "대기를 상대하는" 서문, 2018)

글. 배은아

신현정의 개인전 <대기를 상대하는 >은 온몸으로 대기를 마주하겠다는 작가의 한판 대결이자, 회화 너머 회화를 향해 이야기하는 방식 혹은 말을 거는 태도를 담는다. 언뜻 듣기로는 범 우주적이고 초자연적일 것 같은 신현정의 도전은 무모함을 넘어 짓궂기도 하고 오히려 신비롭기까지 하다. 무모함과 신비로움의 모퉁이에서, 나는 회화의 역사 앞에 선 한 화가의 몸과 그 틈을 촘촘하게 채워나가는 단호하고 작은 움직임들을 애써 붙잡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

어찌 보면 인류는 오랜 시간 무모한 도전을 통해 진화해왔다. 긴 역사 동안 인류는 대기 너머의 우주를 상상하고 대기를 나는 꿈을 꾸었으며, 그 가능성에 도전하고 이제는 그 꿈을 모두 이루어 그 가능성의 가능성마저 고갈된 듯하다. 그러나 신현정의 도전은 이와는 조금 다른 차원의 것이다. 신현정은 일련의 결과물을 통해 자신의 시도를 실체화하기보다는 그 가능성 자체를 이리저리 굴리면서 놀고 있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신현정은 가능성과 결과물에 근접하기만 할 뿐 쟁취하거나 정착하지 않으며 그 다다름 앞에서 자신을 해체하고 원점으로 되돌아오고는 한다. 그렇기에 그림 앞에서 신현정의 몸은 계속해서 변한다. 신현정은 그림이 그려지는 상황을 만들고 흔적들을 조율하는 매개자가 되기도 하고, 외부환경에 의해 경험된 몸의 감각을 전달하는 메신저 혹은 만들어진 사물을 재배치하는 연출가가 되면서, 능동적인 신체로서 화가의 몸을 내려놓는다.

<대기를 상대하는>은 신현정이 2013년부터 2018년까지 대기를 만나고 끌어안고 보살피면서 쌓아온 회화 연작들을 한자리에 모은다. 날씨를 기록하는 <날씨 회화(2013-6)>. 태양의 흔적을 담는 . 물의 차가운 온도를 표현하는 <물과 철(2017)>. 증기를 고체화하는 <하드보일드 티(2017-8)>. 날씨를 기록하겠다는 신현정의 계획은, 날씨와 피부의 감각이 만나는 집중된 순간에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색을 골라, 캔버스의 측면에서 스프레이를 분사하고 화면을 튜닝하듯이 섬세하게 마무리된다. 이렇게 하루하루 날씨를 담은 다양한 크기의 캔버스들은 연약한 철제 책장에 쌓여 시간의 아카이브가 된다. 태양의 흔적을 담고자 하는 신현정의 도전은, 주변의 사물들을 천 위에 배치하고 혹시 모를 곤충이나 기상변화로 인한 침입을 관리하고 기다리면서 흔적을 보살피는 분주한 일상에 가깝다. 강의 흐름을 경험하겠다는 신현정의 모험은, 차가운 물길을 따라가며 열기를 달래던 내장의 느낌으로 색을 만들고 물을 섞어 붓질로 나타낸 다음, 단단하고 차가운 철 프레임 위에 끼워 넣고 공간에 재배치하는 것이다. 최근에 시작된 증기를 고체화하겠다는 포부는, 추울 때 공기를 촉촉하게 해주고 체온을 올려주는 녹차, 홍차, 강황 등과 같은 속이 따뜻한 염색재료들을 물들이고 여러 종류의 천을 직감적으로 겹치기도 하고 정성껏 손바느질로 이어 붙이기도 한다.

미술의 가장 오래된 도구인 캔버스를 여러 빛깔의 따뜻한 물 속에서 끓이고 불리고 짜고 바느질하고 있는 작가의 모습을 상상하며. 미술의 가장 오래된 재료 대신에 이름 모를 사물들이 가변적인 일상의 날씨 아래 빛바랜 흔적들을 발견하며. 캔버스의 오랜 친구인 나무 프레임이 아닌 책장용 철제라던 지 혹은 아예 프레임 없이 각목 위에 빨래처럼 널려진 캔버스를 보며. 나는 무언가가 벌거벗겨지고 있는 듯한 한편으로는 그것에 유혹당하고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놀이라고 하기에는 우아했고, 애무라고 하기에는 파괴적이었으며, 저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도 부드러웠다. 나는 무모함과 신비로움의 틈을 헤아리기 어려운 만큼이나, 신현정의 캔버스가 회화의 이데올로기에서 계속해서 탈락함과 동시에 탈락하는 만큼 더 강렬하게 회화 속으로 흡수되고 있는 그 살아있음 혹은 그 살아가는 방식에 흥분할 수밖에 없었다.

신현정의 대기는 지구를 보호하고 생명체를 살아가게 하는 추상적인 대기가 아니다. 신현정의 대기는 내 몸이 숨 쉬고 내 몸과 관계하는 현실적인 모든 것이다. 작가는 외부환경에 반응해서 순간적으로 일어나는 ‘감각이 집중되는 순간’을 포착하고, 그 순간의 색을 ‘내장의 느낌’으로 만들어, 자신의 피부를 둘러싸고 있는 대기에 ‘직감적으로’말을 걸어온다. 그렇게 신현정과 관계하는 모든 것은 회화가 된다. 그렇다고 그녀에게 회화가 되고 되지 않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신현정은 회화가 된 것에 무심한 듯하고, 회화가 되지 못한 천 조각이라든지 망친 자국 혹은 튀긴 얼룩 같은 것에 눈을 돌리고 다시 주워 담아 꿰매고 이어간다. 이렇게 신현정의 말걸기 사이에 탈락한 파편은 미래의 가능성이 되고는 한다. 작가는 주변의 모든 것과 이야기 나누고 그 이야기에서 창출된 또 다른 주변의 것으로 이동하면서 새로운 감각에 몸을 맡긴다. 그렇다면 신현정의 회화는 대기를 상대하는 또 다른 감각을 찾아 매번 말걸기를 시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기에 그녀에게 가능성의 한계는 끊임없이 유예되고 그 가능성의 가능성은 계속 증식하기만 하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신현정의 말걸기는 무엇을 가능하게 하는가? 혹은 그것은 무엇이 되고 있는 것일까?

주디스 버틀러(Judith Butler)는 말걸기 라는 행위(태도)를 통해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짓는 ‘나’와 ‘너’의 새로운 관계를 열어주었다. 버틀러에 의하면‘나’는‘너’와 맺는 관계 속에서 온전한 정체성을 찾을 수가 없다. 내가 타자와 관계를 맺을 때, ‘나’는 이미 타자가 규정짓는 나의 모습으로 타자에게 말을 걸고 대답한다. 그렇기에 정체성은 자기 자신을 스스로 설명하기가 아닌 타인의 말걸기 속에 있을 뿐, ‘나’는 언제나 타자 앞에서 ‘나’의 이방인, ‘너’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이 된다. 세상의 모든 것이 평등하고 독립적인 만큼 세상의 모든 것은 서로의 타자로서 상대 속에 종속된다. 나. 너. 우리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것은 얇고도 깊은 표면을 가지고 있기에, 외부의 접촉을 통해 쉽게 변질되기도 하지만 강력하게 저항하기도 한다. 끊임없이 왜곡되고 탈락하는 운명에 처해있는 우리는, 단 하나의 언어 단 하나의 이데올로기로 정의될 수 없으며 그 변화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자기만의 태도가 필요한 것이다. 이것이 신현정이 대기를 상대하는 태도일 것이다. 신현정의 회화 너머 회화에 말을 거는 방식은 이렇게 모든 살아있음이 살아가는 다큐멘터리가 된다.

신현정의 말걸기는 자기 자신을 확인하기 위한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신현정은 온 몸으로 세상의 모든 것에 말을 걸어오면서, 그들이 주체적으로 머무를 수 있는 장소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신현정의 회화는 세상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도록 제 몸(화면)을 내놓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나머지는 온전히 대기의 몫으로 남겨둔 채.

* 배은아는 현대미술이 생산되는 과정에 협력해왔고 그 과정에서 만들어지는 개인들의 경험에 관심을 가져왔다. 아브라암 크루스비예가스의 <자가해체8: 신병>(아트선재센터, 2015)을 공동 큐레이팅하고, <터전을 불태우라>(제10회 광주비엔날레, 2014)의 퍼포먼스 협력 큐레이터로 초대되었으며, 써니킴의 재연 프로젝트 <정물><풍경>(2012-14)를 기획 제작했다. 2016년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신현정을 처음 만났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오고 있으며, 이 글은 신현정과 맺는 첫 번째 결과물이다.

Fay Shin’s Address

By Enna Bae

Fay Shin’s solo exhibition Confronting the Atmosphere consists of the artist’s battle to face the atmosphere with her entire body. It also portrays Shin’s way of talking to painting beyond the Painting, or her attitude in addressing to it. Seemingly universal and supernatural, Shin’s challenge goes beyond being fearlessly bold, to being mischievous and even rather mysterious. In the corner of recklessness and mysteriousness, what I witnessed were the small but determined movements of the body of an artist which meticulously filled the gap between herself and the history of painting.

In a way, the humankind has evolved through reckless challenges. In the long history of time, humans imagined the universe beyond the atmospheric layer, dreamt of flying in the air, and challenged such possibilities. And now that their dreams have become a reality, even the possibility of such possibilities seems to have become exhausted. Shin’s endeavors, however, are of a different perspective. Rather than actualizing and manifesting her attempts into a series of outcomes, it seems like Shin is experimenting with and exploring the possibilities themselves. However, Shin merely approaches the possibilities and outcomes rather than settling for them, deconstructing herself to even return to the original point. Therefore, Shin’s body continuously transforms in front of the painting. She rejects the body of the artist as an active body, and throws herself to creating situations where images are produced, becoming a mediator who arbitrates the traces, a messenger delivering the physical sensations experienced in the external environment, and a director who relocates readymade objects.

Confronting the Atmosphere brings together a series of paintings the artist has produced from 2013 to 2018, facing, embracing and caring for the atmosphere. Weather Paintings (2013-6) as a record of the weather, and Sun Drawing (2016) which captures the traces of the sun are included in the series of paintings, as well as are Water and Steel (2017),which expresses the cold temperature of water, and Hard Boiled Tea (2017-8), which deals with the solidification of steam. Shin’s endeavor to record the weather begins by selecting the colors that are instinctively evoked at the intense moment when the tactile senses of the skin meet the weather. The paintings are then produced by spraying the colors from borders of the canvases and refined in a meticulous manner. The canvases of various sizes that capture the everyday weather are compiled on fragile metallic shelves and become an archive of time. Shin’s effort to capture the traces of the sun is like an everyday gesture of arranging surrounding objects on fabric, and observing possible interventions made by unexpected encounters with insects or weather changes. Shin’s experience of the flow of the river consists of creating colors that seem to evoke the visceral sensation of the coldness of the river, adding water to the paint and letting it become manifest through brush strokes. The paintings are then put on the cold and hard steel shelves and rearranged in space. In Shin’s recent aspirations to solidify steam, various layers of fabric dyed with warm-natured dyeing ingredients like green tea, black tea and turmeric — which moisten the air when cold and raise the body temperature— are intuitively overlapped and sewn together by hand with the utmost care.

Imagine the artist boiling the canvas, the oldest art material, in warm liquid of various colors, stretching it, weaving it and sewing it. Unidentifiable objects, rather than conventional art materials, are discovered as faded traces under the variable everyday weather conditions. Canvases hang like laundry, not over the wooden frame as the traditional companion of the canvas, but over steel shelves or over lumber. Looking at Shin’s work, I can sense something being stripped naked, while also feel myself be seduced by it. Her work is too elegant to call it a play, too destructive to call it a caress, and too soft to liken it to resistance. As difficult as it was to fathom the gap between recklessness and mysteriousness, I can’t help but become tremendously excited about the sense of liveness in Shin’s canvases, which become more powerfully absorbed in painting the more they continue to be rejected by the ideologies of painting.

Shin’s atmosphere is not the abstract atmosphere that protects the earth and gives life to living forms. Her atmosphere is everything realistic, relevant to the breathing body. Shin captures the ‘intense moment of sensation’ that fleetingly occurs in the body’s response to the outside environment. The artist then transforms the color of the moment into a ‘visceral feeling’, through which she strikes up an ‘intuitive’ conversation with the atmosphere that surrounds her skin. Everything connected to Shin in such way becomes a painting. That, however, doesn’t mean that whether it becomes a painting or not is not important to her. In fact, Shin seems to care less about things that become a painting, and care more about the pieces of fabric or marks of mistakes or splattered stains that never became a part of a painting, reviving and sewing them back together. This way, the fragments that were excluded from the process of Shin’s addressing become a possibility for the future.The artist shares conversations with everything around her, then moves onto other elements that are created from the conversations, thrusting her body to the new sensations. In this respect, Shin’s paintings are perhaps looking for other different senses that respond to the atmosphere and are attempting to address to it each time. Thus, for the artist, the limitation of possibility may be something that’s endlessly delayed and the possibility of that possibility is something that is perpetually proliferated. If so, then, what does Shin’s address make possible? Or what is it becoming?

Judith Butler opened up a new relationship of ‘I’ and ‘Other’, which define the human identity, through the gesture (attitude) of address . According to Butler, a whole identity cannot be found in the relationship between the ‘I’ and ‘Other’. When 'I' form a relationship with an 'Other', the ‘I’ is already speaking and responding to the 'Other' in the very self that is already recognized by the 'Other'. Therefore, one's identity always rests within the conversation with the 'Other' as opposed to being defined by oneself, and 'I’ is destined to live as a stranger to the self, or as a 'you' to the 'Other’. Everything in the world is equal and independent; thus, everything in the world becomes subordinate in relational to each other as an 'Other'. As all things in the world including 'I', 'You' and 'We' have a thin yet deep surface, everything can easily alter through exterior contact but also resist powerfully. Destined to be endlessly distorted and fallen, we cannot be defined by one single language and ideology, and what’s needed is one’s own attitude of responding flexibly to such change. This is Shin’s attitude in dealing with atmosphere. The way through which Shin addresses the painting beyond the Painting becomes a living documentary of liveness.

Shin’s address is not a process through which the artist confirms herself. Rather, the artist is perhaps addressing to everything in the world with her whole body and making a place where they can remain independently. In that sense, Shin’s painting is about laying down its own corpus (surface) so that everything in the world can address to it. And everything else is left entirely up to the atmosphere.

* Bae Enna has contributed to the development of discourses in contemporary art, and holds a great deal of interest in the experiences of the individuals in the process. Bae co-curated Atodestrucción8: Sinbyeong (Art Sonje Center, 2015), a solo exhibition by Abraham Cruzvillegas, and was invited as the performance co-curator for Burning Down the House (The 10th Gwangju Biennale, 2014). She also organized and curated Sunny Kim’s reenactment projects Still Life and Landscape (2012-14). Bae and Shin met at the 2016 SeMA Nanji Residency, and still continue to share ideas through conversations. This is Bae’s first outcome of collaboration with 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