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것을 상대하는, 신현정의 공기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비평워크숍 2016)

글. 현시원

1. 
생태계, 재료/리듬 


신현정의 <날씨 회화(Weather Painting)>(2013-2016)는 과학적 예측에 기반한 일기예보의 정반대에 있는 독특한 생태계에 기반한 그림들이다. 여기서 ‘생태계’라는 말은 작가 신현정과의 대화에서 그가 들려준 이야기다. 작가는 작업실에서 일어나는 여러 작고큰 사건들을 작업실의 생태계라 부른다. 이를테면 벌레가 창문을 통해 들어오거나 종이가 말려들어가거나 하는 식의 미시적 변화들이 작가의 습관과도 같은 ‘발견’에 의해 포착되고 기록된다. 흥미로운 것은 신현정이 기대하고 있는 생태계는 측정되거나 포획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것은 그리 새로운 말이 아니다. 하지만 흐르는 상태 그대로 포착되고 언제나 발견중인 과정으로 작가의 작업 안에 기거하고 있다는 점은 중요하다. 이러한 사실은 신현정의 관심사가 유동적인 것에 있음을 확인하게 한다. 그의 '유동성'은 마스킹 용액이나 습기찬 지면을 작업에 그대로 끌고 들어오는 물질적 상태를 말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정신적 영감의 향방을 폭넓게 지칭하는 것이기도 하다. 오늘날 정신성 또는 추상적 사고는 20세기의 유산으로 여겨지거나 끝없이 압축된 신호로 대체되고 있다. 말장난 같은 문장이지만 생태계의 생태계를 짓는 이 미세한 차이들의 조정에 의해서 나는 신현정의 작업이 언제까지 이 현 상태로 있을 수 있을까 궁금해졌다. 작가에게 순간적, 즉흥적 감각이 끈질기게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세상의 유동적 상태에 대해, 작가가 감각으로, 전달할 사항이 있기 때문이다. 


신현정의 생태계는 작가를 둘러싼 외부 환경을 지칭한다. 작가는 이를 토대로 그의 작업들을 또 다른 생태계가 머무는 기록의 무대이자 시공간으로 다룬다. 개인전 <점선면과 날씨>(2015)의 기록 사진이 파노라마처럼 쭉 펼쳐진 동굴 벽화처럼 보이고, (2013)의 카페트 회화와 인공 대리석을 흉내내는 시트지가 망가진 가구 상점처럼 보이는 것은 그가 어떤 독립된 (작품/사물들의) 기거 공간을 꾸미는 데 의의를 두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첫째 신현정의 작업들은 언제나 오늘 또 오늘의 대기 상태에 의해 갱신되는 형태를 취한다. 그의 작업은 현실의 재현이 아닌 다른 것들끼리의 중첩이 한 덩어리가 되는 새로운 구조를 세우는 구축적인 성격을 갖는다. 카페트 위에 커피가 흐르고 캔버스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도 하는데 전시장 안에서 같은 시공간을 공유하는 서로 다른 유기체로 다뤄진다. 견고한 현 상태를 유지하는 체계에 관심없어 보이는 작가는 그러나 휘발성이 가득한 현재의 대기를 배포있게 상대하기 위해 2013년 서울의 무더운 여름을 그만의 방식으로 기록하였다.((2013-2015)) 작가가 만든 이 무대는 전시장의 벽으로 이동하여 벽 전체를 감싸안은 형태로 배치되었다. 서로 다른 작업이지만 전체가 하나인 이 벽화는 돌돌 말려진 형태로, 또 따로 떼어진 캔버스 형태로 작가의 주변에 남아있고 언젠가 다른 공간에 입체적으로 기거할 것이다.

둘째 신현정이 몇해 동안 집중하고 있는 <날씨 회화>의 재료는 붓과 아크릴이 아니라 손목과 스프레이라는 점에 또한 집중하고 싶다. 작가는 스프레이가 갖고 있는 '자유로움'의 속성을 대화에서 말해주었다. 분사되는 순간의 가뿐함은 자유로움을 연상시키는 것이 분명하다. 한편 그의 과거 홈페이지를 통해 보았던 인도, 중국 등의 여행, 2000년대 초중반의 애니메이션 작업을 보며 그가 갖고 있는 실생활에서 출발한 펑키함을 감각할 수 있었다. 그러나 스프레이를 활용하는 데에는 자유로움 못지 않게 인공재료를 구입하고 사용하는 수동적 상태라 할 수 있다.(온전히 스프레이 원재료의 색을 만들어내 것은 산업공정이고 브랜드라는 점도 하나의 이유다) 한편 더욱 흥미로운 것은 분사한 후에 주어지는 짧은 기다림의 순간이 마치 스마트폰에서 파일을 다운로드 받을 때 필수적인 디지털 시대의 단발적인 기다림과 닮아있다는 점이다. 캔버스에 뿌려진 스프레이가 갖고 있는 휘발성의 상태는 캔버스 표면 위에서 만들어낸 망점처럼 시야에서 점점 더 멀리 멀어지는 기이한 거리감을 만들어낸다. 기회가 된다면 신현정의 캔버스를 가까이에서 또 멀리 바라보자. 커피의 카페인이 주는 환각 상태처럼 캔버스에 말려들어가지는 않는가? 요가 동작에서 딱 한 번 찾아오는 집중의 순간이 이 캔버스라는 사물 안으로 모여들지는 않는가? 이것은 작가가 노트를 통해 말했던 어떤 “입구”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실물이 점점 사라지는 이 스마트폰 시대에 우리가 이미지를 다루는 방식은 뚫고 나가고 촉감에 의해 만지는 것이 아니라 대상을 향해 한 없이 접근하는 것의 무한대 반복인 클릭인 것과 마찬가지다. 입구들만이 난무하는 시대에 신현정이 하는 것은 “집중”의 감각을 가지고 있는, 아주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조금은 다른 출구다. 이 출구와 입구를 끝없이 반복해보고자 하는 것이 신현정의 회화가 앞으로 쌓았다가 휘발시켜버리고 싶은 오늘의 상태가 아닐까 한다.

작가에게 농담처럼 “날씨 회화, 이 그림들은 언제까지 보존될까요” 라고 묻기는 했지만 이것은 신현정의 작업들이 수장고 안에서, 어딘가에 소장되었을 때 온전하게 컨디션 체크를 견뎌낼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은 아니었다. <날씨 회화>가 건드리는 가벼운 표면의 세계가 축적되었을 때, 그것은 어떤 형태로 수많은 ‘오늘들’을 보내는 “즉흥곡”이 될 수 있을까 궁금했다. 그것은 당연히 누구나 예상가능 하듯이, 장엄한 미사곡처럼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신현정은 '날씨 회화'라는 개념을 만든 셈인데 이것은 겉옷일 뿐이고 그가 정말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떤 죽음과 사라짐 자체가 아닐까 하는 점이었다. 스스로를 '회화 덕후'라 칭할 만큼 회화사에 관심이 많고 대학원 졸업 에세이 또한 회화의 확장성에 대해 연구한 작가에게, 회화의 미래는 그가 경험하는 거의 모든 현실 체계의 앞날과 다르지 않은 말일 것이다. 기후도 기상도 아닌 날씨로 빙자된 ‘집중의 순간’을 붙잡으려는 작가에게 오늘은 시한부로 제시되는 짧은 시간일 뿐이다. 디테일한 첨언이 생략된 캔버스와 합체된 신현정이 날씨라 부르는 감각은 기체가 고체 상태가 된 독특한 사물의 상태를 이야기한다.


2.
아카이브, 미래, 연동

신현정의 작업은 감각의 발견에 기초한다. 발견된(Found) 것을 데리고 노는 신현정의 태도는 매번 다른 곡조의 노래와 리듬감을 찾아 나선다. 2012년에 8월 28일에 제출된 그의 흥미로운 석사학위 에세이에서 첫 문단은 그가 런던 지하철에서 발견한 도시의 "추상 회화"들로 시작한다. 그는 난간에 붙은 낙서들과 오랜 시간의 때가 묻은 패턴들에서 우연적인 색의 충돌을 경험하고 생성 이유를 확인할 수 없는 무늬들에서 '만드는 정신'(만들고 만들어지는 정신)에 대해 생각한다. 신현정에게 있어서 반복되는 행동의 방식이 ‘발견’이라는 행위라면 만물과 만사에 깃든 정신적인 상태들을 발굴해내는 작가의 눈은 흥미진진한 것들을 향해 지속적으로 이동한다. 비균질하며 예측불가능한 작은 사물들의 더미에 관심이 많은 신현정의 재료들은 캔버스와 전시공간이라는 무대 안에서 일시적인 삶을 산다. 2012년에 주로 그려진 그의 회화 작업은 'Found Painting'이라는 어휘 안에 묶이는데 이 캔버스 표면 위에 등장하는 자질구레한 사물들은 점선면이 구획해내는 공간과 즉흥적인 선율 안에서 기시감어린 미술적 삶을 산다.

예를 들어 (2012)에는 하얀 검과 머리카락이, 에는 마스킹 용액과 먼지, 스프레이가 동굴 벽화와 같은 묵직한 흔적들을 만들어낸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신현정이 이런 미세한 사물들을 화면에 등장시키는 만물상 같은 태도로 읽어내는 데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20세기 회화사에 등장하는 컴바인 페인팅, 잭슨폴록, 추상표현주의 등 수많은 거물들의 역사를 상대하는 작가의 눈은 축적된 회화사에 저항하거나 이를 다시 재활용하는 태도라고 단정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 작가는 각기 다른 실험으로 인해 생겨난 20세기의 회화들을 즐기는 한 명의 관람자로서 그 그림들 사이에 난 수많은 통로를 아케이드 걷듯이 걸어나는 유랑하는 '눈'을 활용한다. 표면에 미끄러지듯 달라붙은 시트지들과 대리석과 바위 등 자연을 흉내내는 인공 재질들이 어떻게 회화가 될 수 있고 지금 시야를 기록할 수 있는가 작가는 작업으로 질의한다.

사건 사고의 우발성을 가진 날씨가 주조해낸 눈앞의 상황들이 그렇듯이 신현정이 보는 현실은 변화무쌍하다. 이 변화무쌍한 현실의 기본 뼈대를 찾기 위하여 신현정이 다루는 캔버스는 점선면의 기본 형태를 따르고 있으며, 그가 세우는 질서는 즉흥적이지만 하나의 멜로디가 된다. “즉흥곡”이라 말한 누군가의 표현처럼, 신현정이 캔버스의 측면에 뿌리는 스프레이의 레디메이드 칼라, 캔버스 표면에 공기를 뚫고 나와 달라붙는 속도는 경쾌하고 빠른 속도감을 지닐 것이다. 치-하는 소리를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날씨 회화>는 사운드를 가진 그림이며, 제작 공정에 의해 끝임없이 바깥의 공기와 소통하는 그림이다. 소통이 정확한 말이 아니라면 바깥의 대기를 소환하는 그림이며 그 안에 깃든 이름모를 만물들의 정신을 스치듯 고양시키는 것이 신현정의 회화와 설치 작업들이다.

그의 그림에 대하여 이렇게 저렇게 해설하는 일은 신현정의 생태계가 갖고 있는 가변적 매력을 반감하는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의 작업을 설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가 쌓은 리듬에 또 하나의 가사를 더한다는 심정으로 그림들을 바라보면 <날씨 회화>는 일종의 대기 상태이자 공기로 승화되는 21세기의 회화의 상태를 드러내는 힌트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유령과도같이 흔적을 남기는 스프레이의 이물성은 캔버스에 붙어 가시적이고 비가시적인 모든 상태를 총괄하는 날씨의 부유하는 상태를 고정시킨다. 캔버스라는 사물이 신현정에게 중요해지는 것이 여기서다시 등장하는데, 작가는 캔버스의틀을 벗어나기 위해, 끝없이 관찰하고 유영하며 그 과정을 도시와 그가 사는 현시점의 여름/겨울의 무대로 데리고 온다. ((2013-2015)) 한 편의 무대와도 같이 신현정이 작성하는 <주간예보>(2016)는 총체예술의 극적 긴장감을 가진 상태로 공간을 넓혀간다. <점선면과 날씨>(AG 갤러리) 전에서 그가 벽면을 활용하는 방식과, (2013)에서 사물과 페인팅, 시트지와 악기 형태를 차용한 기이한 조각을 보고 있는 시간은 신현정이 굴리는 시야의 확장성을 보게한다. 이것은 생태계의 무대 소유권을 계속하여 넓혀가는 것으로 나아간다. 투명한 것을 투명하다고 쉽게 말하는 대신, 신현정은 투명한 아케이드와 기능적인 철제 책장과 투명한 창문과 이 모든 장치들을 향해 조우하는 현실의 물적 조건들을 탐구하는 관찰자이다. 이 관찰은 앞으로 어디를 향해 갈 것인가, 여기서 방향은 중요한가 그렇지 않은가 자체가 중요한 선택이리라 생각한다.

요사이 ‘/’(빗금) 친 단어가 사용된 문장이나 제목 등을 자주 보았다. 신현정은 2013년의 겨울, 여름의 작업들 사이에서 빗금을 사용한 바 있고() 신현정의 작업에서 애니메이션과 노래, 길에서 발견한 이미지들과 캔버스에 장착한 재료들은 모두 긴장 상태에 있다. 긴장 상태를 뜻하는 보편적인 용어처럼 느껴지는 ‘/’(빗금)은 신현정에게는 리듬을 조율하고 즉흥적 상태를 추출해내는 정전기를 일으키는 것 같다고 나는 덧붙이고 싶다. 한편 작가가 <날씨 회화>를 설치하는 과정에서 도출한 <오늘의 신간>(2013-2015), <주간예보>(2016) 등은 앵글 구조물을 통해 마치 캔버스를 책을 정면으로 배치하듯이 디스플레이한 상태를 보여준다. 이 (캐릭터가 다른) “얼굴들”(작가의 말)을 다루는 작가는 미묘한 느낌들을 나누기 위한 시도로서 앵글 구조물을 빈 아카이브의 수단으로 가져온다. 아카이브가 아니라 비어있는 아카이브라는 점이 중요하다고 나는 생각하는데 이제는 더 이상 낱낱이 보고하는 것이 피로한 거덜난 아카이브의 세계에서 미래의 인간이 무엇인가 덧불일 것이 있다면 그것은 먼지같은 공허일지, 또 다른 시스템일지, 작가에게는 회화와 사물일지 빈 대기일지 판단 유보 상태의 공기들이 서재를 채우고 있는 듯하다. <날씨 회화>를 철제/앵글로 구조화할 때 작가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철제라는 인공물과 나사로 조여진 수직수평의 철제 틀이라는 이중 삼중의 구조물일 것이다.

한편 이 감각과 미세한 얼굴들은 텅 빈 상태로 어떻게 기록되고 모여질 수 있을까? 이것은 작가의 의도대로 캔버스와 회화를 사물처럼 다루는 어떤 아카이빙이 될 수 있을까? 아카이브라는 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말보다 중요한 것은 이것을 신현정의 작업들이 사진을 찍어놓고 보면 처음에는 텅 빈 거울처럼도 보인다는 사실이다. 대기의 모든 것들은 “모든 단단한 것은 공기 중으로 녹아든다”는 20세기의 매니페스토를 다시, 뒤늦게 적어보고 싶은 마음이 든다. 흩어지고 분사된 기체에 의해 제작된 신현정의 그림들이 한데 모여있는 형상은 거의 모든 것을 상대하는 작지만 큰 그림들이다. 무력의 힘으로는 상대할 수 없는 바람같은 이동하는 정신이다. 작가는 요가를 즐긴다고 하고 명상에도 일가견이 있는 것 같지만 이를 모두 다 물어볼 수는 없었고 남겨두고 싶었다. 마치 커피 자국이 그가 소유한 카페트 위에 요가 동작과 함께 ‘남아 있는’ 것과 같이 말이다.

Confronting with Almost Everything, Fay Shin’s Air

Seewon Hyun

1. Ecosystem, Material/Rhythm

Fay Shin’s Weather Painting (2013-16) is a series of paintings based on a peculiar ecosystem (in opposition to the weather which can be predicted). Here I borrow the term ‘ecosystem’ as Shin uses during our conversation. The artist calls various events — whether important or not — that transpire inside her studio a studio ecosystem. For example, if microscopic changes occur in the studio’s ecosystem, such as a bug entering the room through the window or paper sheets rolled inward, the artist habitually discovers, captures and records them. What is more interesting is the unquantifiable nature of Shin's ecosystem. This is not new at all; yet, it is crucial to see that the artist captures things as they are in their fluid states, which always reside in her work in this process of revelation. This very fact affirms that Shin is actually concerned with things that are in flux. The very fluidity in Shin’s work can be described as a physical state that is exemplified by pulling the wet floor into her piece. But in a broader sense it also indicates the inspirations of the human mind. Today, the notion of spirituality or abstract thinking are either considered the heritage of the twentieth-century or relentlessly substituted by technologically condensed signals. I have become curious in how long the artist’s work can remain in its current homeostatic state when there are always modifications of subtle variations that often determine the ecology of an ecosystem. The reason why the instantaneous and improvised sensations are persistently important for the artist is because she wants to deliver something about the fluid state of our world via her artistic sensitivity.

The ecosystem in Shin’s work designates the outer environment that surrounds her. Based on this her works function as a stage for documenting other ecosystems and spatial-temporal conjunctions. The reason why the documentation of her solo show (2015) resembles cave murals stretched out in a panoramic setting, and a carpet painting and the huge sheet of paper that imitates an artificial marble in (2013) look as if they were gathered from a dilapidated furniture store, is I think because she places emphasis on managing an independent living space of works and objects. Under these circumstances Shin’s works always take on forms that are renewed by each and every day’s atmospheric conditions. In this way her work, rather than being representations of reality, take on constructive characteristics from which to build a new structure as a mass accumulated by different materials. Sometimes the coffee stains on the carpet or canvases as independent objects, all of which are treated as different organisms that share in the spatio-temporal dimension in the exhibition space. The artist, not interested in the kind of system that maintains the rigidified present conditions, records the sweltering summer of the year 2013 in Seoul. In her own way, she does so as to audaciously confront the current atmosphere that teems with wild volatility (Summer Stage/Winter Cave (2013-2015)). The stage, built by Shin, shifts to the walls of the exhibition space and arranges to encompass them entirely. These mural works, which contain independent images but together comprise the whole body of works are remained nearby the artist either in a rolled state or attached to separated canvases. One day the works will three-dimensionally occupy the other spaces.

Furthermore, I would like to focus on the fact that the materials used in Shin’s years-long Weather Painting series are not acrylic and brush, but her ankles and spray paint. The artist once mentioned the “free” characteristics of spray paint. For her, the joyous feeling in the moment of spraying pigments must remind her of a sense of freedom. As seen from her artist’s website about her trips to India and China, and her animation works from the early- to mid-2000s, one can perceive this funkiness in her works that is derived from elements from daily life. However, there is a passiveness in Shin’s work that is commensurable to a sense of freedom, which is caused by her use of prefabricated, artificial materials such as spray paint (the biggest reason is that it is the industrial process of a pigment company that wholly produces the hue of the pigments). Additionally, in this irrevocable digital age, one should note that the short moment of waiting for the visual outcome after spraying directly onto the canvas resembles the instant delay that one experiences when one downloads files from the smartphone. The volatile condition of the canvases’ sprayed surface, like the effect of Ben-Day dots, generates a strange sense of distance from the viewer’s eyes. If you have chance, step closer to or step back from Shin’s canvas. Isn’t there a sense of being drawn into the surface as if caffeine in the spilled coffee brings you an acid trip? Doesn’t the moment of immersion one can experience while practicing yoga converge into the object called the canvas? I suggest that these feelings indicate some form of ‘entrance’ the artist mentions from her note. In this age of the Smartphone, where real objects gradually vanish, ways of dealing with images incorporate this gesture of the “click,” which is an infinitely repeating action of reaching towards the object. In this age teeming with only entrances, Shin’s works — however little different they are – perform a slightly different entrance — one that has a sense of ‘concentration.’ To endlessly repeat the entrance and exit, I think, can be the artist's hope of accumulating and volatilizing the condition of each day — what she further achieves with painting.

Even though I once jokingly asked Shin “how long will the Weather Painting be conserved?” The question doesn't literally mean whether these paintings will endure the archival processes of an institution. When the volatile surfaces of the Weather Painting series accumulate, I am curious how these works might turn into an ‘impromptu’ passing away of numerous ‘todays.’ As everyone can easily imagine, her works can be felt like a magnificent requiem. In other words, Shin creates the concept of a “weather painting,” and this is actually only an outer description. I wonder if what she really wants to talk about is some form of death or disappearing itself. As an artist who is so into the history of art that she even claimed herself to be a “painting otaku,” and who wrote as her MFA dissertation on the expansion of painting, the future of painting is no less than the future of almost every system of reality that she experiences. For the artist who strives to grasp “the moment of immersion” as somewhat uncandidly dubbed as the weather — not as climate or meteorology —, today is only a short moment offered to her with an imminent due date. For the artist who merges with her canvas – one who gets rid of any detailed descriptions —, this sensation she calls the weather tells us that the condition of a peculiar object solidifies from gas.

2. Archive, Future, Inter-linkage

Shin’s work is rooted in the discovery of sensations. Her attitude plays in the search for songs that possess different melodies and rhythms. The first paragraph from the interesting master’s dissertation of the artist, published in August 28, 2012 opens with the “abstract paintings” she discovered in a tube in London. Here, she experiences doodles drawn on a balcony and random collisions between colors from the patterns smudged by old stains, and thinks about the “making mind” (a mind that makes and is made) from the patterns created out of mysterious intents. If, for Shin the method of repetitive action is the very act of ‘discovery,’ the artist’s eye that excavates mental states and is embedded in every object and event in the world, constantly shifts to more riveting objects. The materials of the artist — who is much concerned with heterogeneous, unpredictable and small objects — temporally dwell in the stage called the canvas and the exhibition space. Her paintings, produced mostly in 2012 can be categorized under the term “found painting.” The variegated objects that appear on the canvas surface live the life of a work that is full of déjà vu within the space composed of points, lines, planes and improvisational melodies.

For instance, white gum and hairs in Gum Island (2012); masking fluid, dirt, and spray paint in Cold Lilac (2012); create these heavy traces like a cave painting. What is crucial here is that in reading these images Shin does not take the role of a chandlery, who presents such miniscule objects onto the canvas frame. It would be difficult to conclude that the artist’s eye, who has dealt with the history of various canons and masters such as Combine painting, Jackson Pollock, and Abstraction Expressionism, resists the long amassed history of art or simply recycles these references. As a viewer of twentieth-century painting who emerges from various visual experiments, the artist makes use of a vagarious ‘eye’ that strolls through the numerous arcades between these paintings. With her works, the artist questions how sheets of paper adhered to the wall or industrial mediums that mimic natural elements such as marbles or rocks can possibly turn into painting and subsequently document our vision.

As is the view right in front of one’s eyes crafted by the weather (from a contingency of incidents), the reality Shin sees is vicissitudinous. In order to find out the basic frame of this fickle reality, her canvas follows basic forms of points, lines, and planes, and the order she builds becomes but an improvisational melody. Like the expressive term ‘impromptu,’ the spreading of her spray paint to the margins of the canvas, its readymade color, and the velocity that breaks throughout the air on the canvas surface provides viewers with airy and speedy senses. One can easily expect to hear hisses from the use of the spray. In this vein, Weather Painting is a visual work that is accompanied by sounds, and in the course of production the work constantly exchanges various forms of feedback with the outside air. If interaction is not the exact term, then it could be otherwise described as work that summons the outside air. These are the characteristics of Shin’s painting and installations that smoothly elevate the spirit of all the unnamed things that dwell in these works.

I sometimes think that to interpret Shin’s painting in such and such ways can decrease the fluid appeals that her ecosystem demonstrates. Rather than to describe her work of art, however, if I view her paintings and can imagine adding one more line to the rhythms she accrues, I predict that Weather Painting will become a clue in presenting the state of twenty-first-century painting — one that is sublimated into an airy condition or even air itself. The sense of irritation that spray paint provokes towards the viewer, when applied to the canvas, fixes the floating condition of the weather that organizes an entire state of things, visible as well as invisible. Once again the object called canvas becomes an integral element to Shin, and the artist — in order to escape from the canvas frame—patiently observes and floats, eventually bringing the process to the city and the stages of summer and winter she currently lives in now — Summer Stage/Winter Cave (2013-15). In Weekly Forecast (2016) where the artist executes like a stage drama, she expands into the space and maintains an extreme tension. Her method of utilizing walls in her solo show held at AG Gallery, and the use of time in which one sees the strange sculpture that appropriates forms of objects, paintings, paper sheets, and musical instruments in (2013) lead the viewer to see the expansion of Shin’s vision. This proceeds by continuously expanding the proprietorship of the ecosystem stage. Instead of easily saying what is transparent is indeed transparent, Shin becomes an observer who explores physical conditions in the real world, encountering the transparent arcade, the functionalist steel desk, the transparent window, and all the other apparatuses. Where will her observation lead? Whether the direction is important here or not; I think these are themselves the important decisions.

Recently, I frequently see the ‘/’ mark used in the titles or words she employs. In the winter of 2013, Shin used the slash mark for both her winter and summer works (Summer Stage/Winter Cave). In this manner, animation and songs, found images from the street and materials applied to the canvas are all placed in tension. I would like to add that the slash ‘/’ mark, which is to me like a sign that denotes a state of tension, to the artist works as if it generates static electricity that arranges rhythms and extracts improvisational states. Meanwhile, New Releases (2013-2015) and Weekly Forecast (2016), works that the artist draws from the process of installing Weather Painting, presents themselves through angled structures as if she places her canvas like books made to face the reader with their titles facing forward. In order to share this subtle nuance, Shin, in dealing with these (differently characterized) ‘faces’ (the artist’s statement), brings the angled structures to express the empty archive. I think what is noteworthy is that the archive is empty. In this world of the deprived archive, the subject’s will to meticulously report is completely drained. If there is something to add for the people of the future, it seems to me that the air of postponing decision making — whether it should be a dirt-like emptiness, or another system, paintings and objects for the artist, or empty atmosphere — fills up the library.
When producing Weather Painting into a steel structure, what turns out to be a problem for the artist is the material of the steel artifacts and the twofold and threefold structures that are comprised of horizontal and vertical steel frames which are tightly screwed.

How can this sensation and subtle countenances in an empty state be recorded and gathered? Can this be an act of archiving? Of treating canvas and painting like ordinary objects, as the artist insists? More important than asking how to use the term archive is the fact that the photos of Shin’s works look at first glance like an empty mirror. I want to belatedly reuse the famous sentence from a nineteenth century manifesto, where within the air “all that is solid melts into air.” The picture conglomerated by Shin’s paintings, produced by dispersed and sprayed gas, is a small gesture with large significance — one that confronts almost everything. It is a moving mind like the wind that cannot be confronted by force. I would like to believe that Shin enjoys practicing yoga and is good at meditation — yet, I cannot not ask all the questions. I would like to leave these questions, ‘lingering upon’ them like the coffee stain on the artist’s carpet, along with these movements of yoga.